나의 3번째 고등학교다.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하얀색 운동화와 짙은 청색 반바지는 그대로다.
하얀색 폴로는 하늘색으로 바뀌었다.
학교 수업 1교시 10분 전.
“삐삑삐삑”
알람이 울린다.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이를 닦고, 머리를 감고, 간단하게 수건으로 말린 뒤, 젖은 머리카락에 걸쭉한 왁스를 살짝 바른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2차선 도로가 보인다. 횡단보도는 없다.
오토바이 무리가 나에게 다가온다. 나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90도 돌려 온화한 미소를 보인다. 그들은 나의 발걸음 속도를 계산한다. 나의 몸을 감싸며 두 줄기가 되었다가 다시 한 줄기로 뭉친다. 하천 위에 있는 바위가 된 느낌이다.
중앙선을 지나 고개를 왼쪽으로 180도 돌린다. 반복된다.
학교에 도착했다.
몰려다니는 농구부 팀원들을 만났다.
그들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농구부 선배 중 한 명은 웃으며 영어로 말했다.
“Who do you think he is?”
그가 나를 농구 경기에서 처음 봤을 때 나의 보라색, 노란색 짝짝이 나이키 신발을 보고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본데?”라는 생각했다고 한다.
이들은 조직의 일원으로 나를 받아주었다. 구단에 영입된 용병처럼 말이다.
새로운 유니폼을 받은 나는 목표가 있었다.
나는 최고 대학에 가고 싶었다.
현재의 위치를 파악한다.
“영어 SAT 읽기 점수 340점. 100명 중 97등 정도...”
목표 앞에 초라한 모습을 받아들인다. 상관없다. 익숙하다.
남은 시간을 계산한다.
“지금은 9월, 내년 10월에 대학 원서 제출. 1년 남았다.”
목적지에 가기 위해 넘어야 할 난관을 바라본다.
- 고등학교 2학년 최상위 내신
- 상위 1~2% SAT (미국 대학 수학/영어 입시 시험) 점수
- 만점에 가까운 SAT II (수학, 화학, 생물 과목 시험) 점수
- 만점에 가까운 토플 (외국인 영어 능력 시험) 점수
- 과외 활동 및 교내 리더쉽
- 학생 운동 선수
- 2장의 추천서
- 매력적인 지원서
압박의 감정이 느껴진다.
1년 안에 8마리의 토끼를 잡아야 한다.
지원서라는 코스요리를 미국 대학 입학사정관에게 선보여야 한다.
나는 후발주자다.
후발주자가 같은 목적지에 먼저 도착하기 위해서는 2가지 방법밖에 없다.
더 빨리 뛴다. 더 오래 뛴다.
여기서 “빨리 뛴다”의 의미는 같은 시간 안에 남들보다 더 많은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누군가 10분 안에 단어 10개를 외운다면 나는 20개 외울 수 있어야 한다. 최적화된 학습 방법을 스스로 탐구해야 한다.
“오래 뛴다”의 의미는 최적화된 학습 방법으로 의미 그대로 오래 공부한다는 것이다.
먼저 공부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첫 번째, 친구는 사귀지 않는다. 점심 혼자 먹는다. 통학 시간이 없어짐과 동시에 일주일 10시간 더 공부할 수 있다.
고2 기간 주말을 포함하여 누구와 학교 밖에서 밥을 같이 먹은 기억이 없다.
두 번째, 운동 시간을 줄인다. 개인 연습은 따로 하지 않는다. 친선 경기와 팀 연습에만 참여한다. 매주 10~15시간 더 공부할 수 있다.
세 번째, 매주 일요일 예배를 드린다. 한 주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수련회와 운동회는 참석하지 않는다.
이제 시간을 확보했다.
내가 2년 동안 겪어야 하는 과정을 알아본다.
이 하늘색 교복 학교는 스위스 기반 “IB”라는 학위 과정을 운영했다.
국제학교 학부모, 주재원 가족, 궁금하신 독자분들을 위해 미국, 영국, 한국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되는 IB 과정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IB는 영어로 International Baccalaureate Diploma Programme라 불리며, 직역하면 “국제 학위 과정”이다. 2년 과정 학위다.
IB 공식 홈페이지에는 스타벅스처럼 전 세계에 5,000개 넘는 “IB 학교(IB School)”가 등록되어 있다. 한국에는 10개 정도의 IB 학교를 찾아볼 수 있다.
각 IB 학교를 프랜차이즈 “지점”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IB “본사”는 학위에 필요한 꼼꼼한 매뉴얼을 제공한다.
IB 학위 수여 조건이 쉽지 않다. 학생은 2년 동안 수강할 6과목을 고른다. 6과목 중, 3과목은 심화 과정 (Higher Level), 나머지 3과목은 일반 과정 (Standard Level)을 선택해야 한다.
6과목 이외도 철학 과목 수강 그리고 봉사 활동 시간 제출이 요구되며, 졸업 논문을 작성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2년 후, 6과목에 대한 “수능”을 본다.
IB 본사는 프랜차이즈처럼 각 학교를 감사한다. 교사는 주기적으로 학생 과제물과 자신이 채점한 점수를 본사에 제출해야 한다. 심리적 부담이 크다. 본사는 학생의 점수를 정정하기도 한다.
교사의 역량이 중요하다. 졸업 논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도교수처럼 연구 방향성에 대한 조언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당시 하늘색 교복 학교 선생님 대부분은 석사 학위를 가지고 계셨다.)
이런 조건 때문에 IB 과정은 주로 공립이 아닌 사립학교에서 운영된다. 그런데도 전 세계 100명 중 20~30명은 탈락한다. 학위 과정 난이도가 상당히 높음을 알 수 있다. (이 하늘색 교복 학교도 IB를 강요하지 않는다. 학교 평균 IB 점수와 통과 비율이 공개되기 때문이다. 당시 학생 절반 정도만 IB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IB는 미국, 영국, 한국, 홍콩을 포함하여 전 세계 대학 입시에 큰 도움이 된다. 당시 IB 평균 점수만 획득하더라도 30위 밖 미국 중상위권 대학에 입학이 가능했다. 전통적인 미국 기숙 사립학교도 “IB 학교”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단점도 있다. 다양한 과목을 수강하기 어렵다. 2년 동안 6과목만 들어야 한다. 당시 과학은 2과목만 들을 수 있었다. 이는 미국의 AP 과정보다는 불리하다고 볼 수 있다. AP의 경우 한 학기마다 다양한 과목을 수강하고 공증된 성적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똑똑한 학생들은 IB 학위 과정을 밟으면서 독학하여 AP 점수를 대학에 제출하기도 한다. (인도에서 국제학교를 다닌 대학 기숙사 한국인 룸메이트가 그렇게 했다. 압도적인 친구다. 캘리포니아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나는 2년 동안 들어야 하는 6과목을 선택했다.
심화 과정에는 (1) 수학, (2) 생물, (3) 지리 과목을 골랐다. 일반 과정에는 (4) 화학, (5) 영어, (6) 한국어를 골랐다.
위 과목 선정은 준비가 안 된 학생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는 당시 “화학”이 아니라 “지리” 과목을 심화 과정으로 선택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도 전공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또한 공대에 가기 위해서는 생물 대신 물리를 선택해야 하는 것조차 몰랐다. 부모님께서 맹모삼천지교를 실현하였지만, 구체적인 이공계 전공을 위한 방향성에 대해서는 모르셨다. 당연하다. 어머니는 영어를 아버지는 경영을 공부하셨다. 감사하다. 부모님께서 주신 기회와 성장 경험을 바탕으로,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방법을 찾아간다.
6과목 중 내가 좋아했던 수업은 한국어(Korean)였다.
내가 이 수업을 고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영어를 정복하기 위해 금기시하던 한국어를 한시름 놓아주고 싶었다. 또한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되찾고 싶었다. 다양한 문화가 섞인 곳에서 나의 근본, 즉 민족과 역사의 뿌리를 알아야 더욱 단단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다.
IB 한국어 수업은 일반 대학 교양 수업과 비슷했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과 같은 고전문학을 읽었다.
학생 10명, 한국인 학생 절반 정도가 이 원어민 IB 한국어 과목을 들었다. 해외에서 오래 산 한국 학생은 이 수업을 들을 엄두조차 하지 못한다. 한국어를 매일 사용하더라도 정확한 띄어쓰기, 문법, 맞춤법을 구사하기 어렵다. 뉴스를 하루 종일 듣더라도 따로 훈련하지 않는 한 아나운서처럼 발음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나는 한국어 수업을 잘 따라갔다. 친구들이 입시를 위해 영어 공부하는 동안, 나는 도서관에서 마음껏 책을 읽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비문학을 주로 읽었다. 하지만 내가 써야 했던 글은 주장, 근거, 대조를 이용한 설득의 글이었다.
한국어 선생님은 대학생 수준의 글을 원하셨다. 학생들은 점수를 낮게 준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나도 가끔 동참 했다. 나는 이미 좋은 점수를 받고 있었다.
나에게 어려웠던 과목은 “화학”이었다. 이 화학 선생님은 미국에서 자라신 한국계 혼혈 분이셨다. 미식축구 선수처럼 팔뚝이 청소년 남자아이 허벅지만큼 두꺼웠다. 주로 반팔 폴로 티셔츠를 입으셨는데, 핸드볼 2개가 양쪽 팔에 붙어 있었다.
항상 이를 보이시며 온화한 미소를 지으신다.
학생들은 이 화학 선생님을 두려워했다. 매주 쪽지 시험을 나눠주셨고, 3~4주마다 시험을 정섯껏 준비해 주셨다.
많은 학생들은 트라우마 때문에 화학을 포기했다. 결국 전교생 중 10명 정도만 IB 화학 과목을 선택했다. 대신 이들은 내신을 좀 더 수월하게 받을 수 있는 IB 물리를 택했다. (30명 정도가 수강했다.)
IB 화학 수업을 선택한 학생들은 공대나 의대를 목표로 한 이들이었다.
당시 나는 전학생이었다. 물리를 배워본 적이 없었기에 단지 화학을 선택했다.
수업 끝나기 10분 전, 쪽지 시험을 나눠 주신다. 학교 수업을 마치는 종이 치면 이 선생님은 매일 같은 영어 속담을 웃으면서 말하신다.
“Pay the piper.”
“piper”는 파이프를 연주하는 사람, 즉 “피리 부는 사람”이고. “pay”는 모두가 아는 대로 “지불하다”라는 뜻이다.
피리 부는 사람의 음악을 감상했으면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의미다.
즉, ‘전날 흥겹게 놀았다면 시험에서 대가를 치러야 한다’라는 심오한 조언이 담겨있다.
나는 자극을 받는다. 속담 때문이 아니다.
이 학교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한국인 학생이 있다.
이 학생은 쪽지 시험에서 매번 만점을 받고 최고의 시험 성적을 받는다.
이 학생은 감히 압도적이다. SAT 만점 또는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다. 고맙다. 존재만으로도 나에게 큰 자극을 준 학생이다.
이 친구에게 어떻게 공부했는지 물어보지 않는다.
한참 고민 끝에 기발한 방법이 떠올랐다.
바로 선생님이 낼 수 있는 문제를 모조리 푸는 것이다.
학교 건물 지하에 교사에게 책을 빌려주는 창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관련 화학 서적을 모두 빌렸다. 검색엔진을 사용하여 다른 고등학교에서 만든 시험 문제와 IB “수능” 기출문제를 최대한 많이 풀었다.
모든 과목을 이렇게 공부하지 못한다. 다만 내 성적표 안에 “A”를 얻기 위해서는 이것이 나의 방법이었다.
“Yes!”
시험지에 전날 푼 문제가 나온다. 오른손으로는 펜을 잡고, 왼손으로는 주먹을 가슴 위로 움켜쥔다. “이거지!” 소리없는 함성이 가슴에 울린다. 그리고 내 어깨를 툭툭 손바닥으로 두드린다. 이 감정은 다음 시험을 위한 노력의 연료로 사용된다.
도서관에 걸어가는 시간조차 아깝다. 나는 금요일 저녁과 주말이 기다려졌다. 3일 동안 아주 멀리 더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말이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화학 선생님으로부터 인정과 추천서를 받고 싶었다.
나는 이 학교에서 누구도 하지 않는 도전을 했다.
IB 화학 과목을 일반 과정에서 심화 과정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화학 선생님과 학교 대학 카운슬러의 동의가 필요했다.
화학 수업이 어렵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전교생 중 혼자서 6과목 중 3개가 아닌 4개의 심화 과정을 듣는 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2개의 일반 과정조차 해외 국제학교에서 보기 드문 영어, 한국어 이중언어 IB 학위 (Bilingual Diploma)을 밟고 있었다.
나는 후발주자다. 만약 선두가 되지 못하더라도 단기간의 성장을 통해 잠재력을 입학사정관에게 보여줘야 한다.
과제, 시험, 운동 경기가 한 주에 몰리기도 한다.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다. 눈은 감지 않는다. 초점이 없는 눈으로 버틴다.
화학뿐만 아니라 수학도 쉽지 않다. 수학 심화 과정은 일반 과정과 난이도 차이가 크다. 선생님과 수업이 따로 배정된다.
수학 선생님은 베트남 분이셨다. UC 버클리에서 수학을 공부하셨다. 선생님은 수학을 사랑하신다.
선생님은 주로 수업을 진행하지 않으신다. 학생 모두가 자신처럼 독학하기를 바란다. 수업 시간에는 자유롭게 수학에 대해 토론을 원하신다.
한국인 학생들은 칠판 앞에 서서 내가 처음 보는 공식을 휙휙 적으며 질문을 주고받는다. 선생님은 세상에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학생들은 감사의 표시로 입을 벌려“우아~아!”라고 반응한다.
내가 질문하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기도 하신다.
충격에 빠진다.
한국인 학생 대부분은 미적분 과정을 방학 때 이미 예습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들어가면서 미분이라는 수학 용어를 처음 접한다. 나만 충격에 빠진 건 아니었다. 이 수업에도 농구부 팀원이 있었다. 1학기가 지났다. 이 친구는 중도 포기했다.
버틴다. 그냥 버티는 것이다. 교과서를 꾸역꾸역 읽는다. 비속어를 크게 외치면서 계속 읽는다. 그냥 한다. 그래야지만 최고 대학에 지원할 수 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마무리되었다.
만족하는 내신을 얻었다.
아직 SAT 영어 읽기 점수가 만족스럽지 않다.
영어 단어 문제다. 일반 원어민도 잘 모르는 영어 단어를 수 천개씩 알고 있어야 한다.
운동하고 집에 오면 5시쯤 된다. 과제, 쪽지 시험, 시험 앞에 영어 단어 암기는 뒤로 밀린다.
원어민 학생들은 지문 중간에 나오는 모르는 단어의 뜻을 유추할 수 있다. 나는 그 위아래에 모르는 단어가 나온다.
단어 뜻을 모르면 문제 푸는 기술이 뛰어나도 고득점을 얻기 어렵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특단의 응급조치를 취해주셨다.
나는 여름 방학 기간 지하철로 2시간 통학하여 강남에 있는 SAT 전문 학원을 다녔다.
오직 하나. 영어 읽기 점수를 높이기 위해서다.
한 달 학원비가 국내 대학교 1학기 등록금이다. 이 투자 비용이 아깝지 않도록 공부했다. 부모님의 과감한 지원에 감사하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2번째 SAT를 보았다. 점수는 올랐다. 만족하지 않는다.
원서 제출 한 달 남았다.
3번째 SAT 마지막 시험. 손을 떨며 영어 읽기 지문을 푼다.
만족하는 점수를 얻었다.
340점으로 시작한 영어 읽기 모의고사 점수는 3번의 시험 끝에 800점 만점 700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상위 1%에 근접한 SAT 점수를 얻었다. 또한 SAT II 수학, 화학, 생물 3과목에서 만점 또는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획득했다.
당시 과외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마지막이다. 과외 활동이다.
입학사정관에게 공증된 리더십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학년 대표 선거에 출마한다.
그들은 전학생 Bob을 뽑아주었다.
대학이라는 목표 앞에 친구는 없었지만, 그들은 나의 행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대학을 선택해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미국 최고 대학에 가야만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8가지 항목을 찾고 달려왔다.
그러나 어느 대학에 가야 하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과했다.
학비.
나는 부모님과 미국 대학교 “학비”에 대해서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께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 거론조차 하지 않으셨다.
국제 올림피아드 수상 정도의 실력이 아니면 최상위 미국 대학교에서 외국인이 장학금을 받기는 어렵다. 나는 이런 부류의 학생이 아니다.
중학교에 들어갈 6살 아래 여동생도 있다.
나는 미국 사립대학에 가고 싶다. 이미 소수 정예 사립학교의 장점을 국제학교를 통해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20위권 대학은 UC 버클리, UCLA 외에는 사립이다.
유학비는 나의 여권 색깔처럼 나의 통제 밖이다.
특이한 학교를 발견한다.
“쿠퍼 유니온 (Cooper Union)”이라는 곳이다.
“노조인가?”
뉴욕 맨해튼 한가운데에 위치한 사립 대학이다. 캠퍼스는 없다. 빌딩 2개가 전부다. 여기 학생들은 “맨해튼이 캠퍼스”라고 말한다.
이 학교는 색다르다. 학교 이름에 대학 “University” 또는 학부를 의미하는 “College”가 없다. 박사과정 또한 없다. 천 명 미만의 학부생 중 대부분이 공대생이다. 공대 전공도 4개뿐이다 (화학, 기계, 전자, 토목). 그 외 학생들은 건축과 미술을 전공한다.
이 학교의 특징은 장학금이었다. 국가, 신분, 종교, 인종, 성별 상관없이 모든 학생에게 장학금을 준다. 이 학교는 뉴욕을 대표하는 빌딩 중 하나인 크라이슬러 빌딩을 소유하는 건물주다. 다양한 임대료 수입으로 150년 넘게 전 학생에게 전액 학비 장학금을 지원해왔다.
입학이 쉽지 않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당시 2013년도 합격률은 7.27%로 미국에서 5번째로 낮았다. 1위부터 4위는 스탠퍼드 (5.69%), 하버드 (5.79%), 예일 (6.72%), 컬럼비아 (6.78%)다. MIT(10.7%)와 Caltech (10.6%)보다 낮은 합격률이다.
공대에 지원하려면 SAT II 과목 시험 점수를 제출해야 한다. 미술, 건축은 입시 과정이 따로 있다. 총 전공이 6개뿐이라 차곡차곡 준비된 학생만 지원할 수 있다.
재정 문제로 당시 전액에서 반 전액 장학금으로 바뀌었다. (최근 기부금을 받아 다시 전액 장학금으로 바뀌고 있다.)
내가 지원한 2015년도, 반 장학금 정책으로 인해 합격률이 10% 초반으로 바뀌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감사하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합격률로 내가 이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생각 해본다. 아무도 모른다. 운칠기삼이다.
여기다. 나는 이 학교에 가야만 한다.
나는 “Early decision” 제도를 이 학교에 이용한다. 이 제도는 한 대학에 먼저 지원하고 합격하면 반드시 등록해야 한다.
나는 이 지원서에 모든 것을 건다.
대부분의 학교 원서에는 자기소개서와 1개 또는 2개 추가 질문을 한다. 이 학교는 10개 이상의 질문을 한다.
“왜 화학 공학을 하고 싶은가?”
보육원에서 한 학기 봉사활동을 했던 경험이 있었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뛰면서 같이 놀 줄 알았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이 아이들은 베트남 전쟁의 피해자였다. 미국은 게릴라전을 방지하고자 헬리콥터로 고엽제를 숲 위에 뿌렸다. 이 고엽제는 몸과 땅에 흡수되어 방사선 피폭처럼 인체의 DNA를 파괴했다. 세대를 걸쳐 치유할 수 없는 병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사회가 필요로 하는 화학 제품을 만들더라도, 엔지니어로서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싶다고 말했다.
원서를 마무리했다.
하버드에서 석사 학위를 받으신 컴퓨터과학 선생님과 문장을 고쳐나갔다. 아버지는 내가 받은 상장, 수십 개의 운동 경기 메달, 등을 기록해 두셨고 이를 원서 안에 첨부했다. 화룡점정으로 아버지는 문서의 멋을 살려주셨다.
합격했다.
Early Decision이라는 제도를 이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추가 장학금을 주었다. 국내 대학교 2년 정도의 등록금 정도 된다.
추가로 받은 장학금 이름이 “Innovator’s scholarship”이다. 혁신적이며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아버지 회사 자녀 대학 등록금 혜택을 통해 한국 사립 대학 등록금 정도의 학비만 내면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다시 자전거를 꺼낸다.
푸미흥을 자유롭게 누빈다.
학생 운동선수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상인 “올해 남자 운동선수” (The Male Athlete of the Year) 상패를 받았다. 고등학교 교장선생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You are a role model of many students.”
“많은 학생들에게 본보기가 된다.”
하지만 당시 내 성적은 최상위에서 상위권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자전거로 내리막을 타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대학 입학은 인생에 있어서 언덕 하나 넘은 것뿐인데...”
아직 IB “수능”이 남았다.
집중이 안 된다.
나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했다. 마치 수시로 대학에 합격하여 수능을 열심히 준비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더 빨리, 더 오래 뛸 이유조차 없다.
시험이 다가올수록 교장선생님의 “본보기”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나는 입학사정관, 교장선생님, 운동 코치, 부모님, 그리고 나를 학년 대표로 뽑아준 친구들 앞에 당당하고 싶었다.
매일 하기 싫었다.
매일 했다.
이전 노력의 원동력은 결핍이었다. 지금은 신뢰와 감사다.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원하던 대학원에 합격했다. 아직 논문 제출이라는 “IB 수능”이 남아 있다. 잘 마무리해야 한다. 지도교수님께 감사를 표하는 방법이다.
최종적으로 나는 학교 평판에 도움이 되는 점수를 받고 졸업했다. 2년 전 입학을 허락하신 미군 출신 입학사정관을 찾아가 나의 최종 IB 점수를 말했다. 내 몸 안에 있는 채무를 덜어내는 느낌이었다.
2015년 5월 한국에 돌아왔다.
농구하다가 발에 걸려 정강이와 무릎 사이를 바닥에 부딪쳤다.
후방십자인대가 파열되었다.
1년 재활 시간이 필요한 큰 수술을 받았다.
“아.. 쿠퍼에서 농구해야 하는데.”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프랑스를 경유하는 비행표를 구매했다.
무릎 수술을 받은 지 한 달 정도 되었다. 나는 목발에 신체의 반을 의지한 채 유학길에 올랐다. 목발 옆에는 캐리어 두개, 기내용 캐리어 하나가 있었고, 모든 전자 기기가 들어간 가방을 메고 있었다.
부모님과 동생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보안검색 과정에서 목발 사용이 번거롭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무릎이 욱씬거렸다. 낯선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미국 뉴욕 케네디 (JFK) 국제공항, 밤에 도착했다.
한인이 운영하는 밴을 탔다. 이 밴은 길쭉한 맨해튼섬을 향해 수직으로 향하고 있었다.
앞 유리를 통해 스카이라인이 보인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처럼 100년이 다 되어가는 초고층 건물과 신축 파란색 유리 기반의 새로운 초고층 건물들이 서 있다.
이 섬은 ‘어서 와, 뉴욕은 처음이지?’라며 나를 반겨주었다.
나는 모르고 있었다. 물리라는 과목은 앞 호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상태로 건들건들 내가 오기를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교 1학년 1학기.
다시 학점은 2점대로 내려간다.
학교를 중퇴할지 고민한다.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4화를 마치며
뉴욕 맨해튼에서 대학 1학년 생활은 어땠을까요? 국제학교보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인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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